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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율곡과 파평윤씨 문정공파 사람들

기사승인 2021.12.13  10: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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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항교(전오죽헌박물관장) 문학박사

"나라에 먹을 것이 있고 군대가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백성이 서지 못한다."

사회가 서로 불신하게 되면 나라꼴이 엉망이 되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1560년 율곡이 한 고을의 아름답고 착한 풍속을 진작시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파주향약(坡州鄕約)'을 제정하면서 머리글에서 밝힌 내용이다.

향약은 같은 고을 사람끼리 함께 지키는 향촌 자치규약으로 중국 송나라 때 체계화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519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율곡은 파주향약 제정이후 서원향약, 해주향약, 증손 여씨향약 등을 저술하여 시행케 하였다.

우리나라 향약 가운데 가장 완벽한 율곡 향약은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가 바로잡아 고쳐주며, 아름다운 예속으로 서로 사귀며, 어려움을 당한 이웃은 서로 돕는다.”라고 하는 것이 기본 강령이다.

여기에서 율곡은 인간으로서 본성을 훼손하여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악적(惡籍)에 올렸는데 그 행동을 명확히 규정하여 놓았다.

“부모에게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자, 삼촌이나 형에게 욕설을 한 자, 상복을 입고 술에 취한 자, 하인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한 자, 바깥에서 윗사람을 욕한 자, 어버이는 가난하고 자식은 부유한데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자 등은 가차 없이 악적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인조 때 대사간을 지낸 윤황의 아들 윤순거는 이 같은 율곡 향약을 근거로 별도 문중 규약을 만들어 매년 한 차례씩 모든 종인과 자제들에게 문정공파 후손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하여 교육하였다.

고려 윤관장군 34세 손 윤황(尹煌)은 파평윤씨(坡平尹氏) 문정공파 파조(派祖)로 율곡과 성혼 문하에서 배웠으며, 후일 율곡의 제자 김장생에게 예학을 배웠다.

또한 아들 윤순거, 문거, 선거는 김장생의 아들 김집 문하에 출입하면서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다.

이로 인해 윤순거는 1660년 영월군수로 있을 때 단종 능을 보수하였으며, 윤문거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사간원정언으로 있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인조 임금을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하였다.

윤선거는 윤증(尹拯)의 부친으로 잠시 관직에 나갔다 물러나 다시는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스승 김집 묘표를 지었다.

김집은 율곡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윤황 아들 셋은 율곡 사위에게 배운 셈이다.

윤황 부인은 율곡과 도의지교를 맺고 평생 서로 학문을 토론한 조선 중기 대표적인 학자로 추앙받은 우계 성혼의 딸이다.

율곡은 이조판서로 있을 때 성혼을 이조참판으로 천거하여 함께 국사를 보기도 했다.

성혼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파주에 이주해 학문을 닦았다.
공교롭게도 율곡 이이나 우계 성혼은 모두 파주에 있는 고을 이름을 호로 삼았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공신이 된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尹莘達)이 터를 잡은 파주는 율곡 선대 고향이기도 하며, 율곡 내외와 부모님, 그리고 가족이 잠들어 있는 자운서원이 있는 곳이다.

엊그제 문정공파 윤황 12세 손 윤석열 후보는 오죽헌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앞으로 율곡 선생을 사표로 삼겠다고 했다.

 

파주일보 sky7675@hanmail.net

<저작권자 © 파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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